정부는 제36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2016년 ‘올해의 장애인 상’ 3명을 선정 발표했다. 국내 유일의 맞춤형스포츠휠체어 제작에 성공하며 경영인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체 1급 금동욱 (주)휠라인 대표와 88서울장애인올림픽 국가대표 골키퍼로 활약했으며 현재 서울시립뇌성마비 복지관 축구단 코치를 맡고 있는 뇌병변 2급 윤정열, 고등학생 소리꾼 지적 3급 장성빈 군이 ‘올해의 장애인 상’ 영예를 안았다.

이들의 시상식은 20일 여의도 63빌딩 그랜드볼룸홀에서 열린다.

 

금동욱 (주)휠라인 대표

금동욱 “내가 탈 휠체어를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낙담만 하고 있을 수 없었어요. 가진 게 기술 밖에 없어서 기술로 뭐든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자동차정비로 언젠가 자신의 사업장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살아가던 21살 청년 금동옥(남・44・지체장애)은 우연한 사고로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혈기왕성한 나이, 평생 장애인의 삶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홀어머니와 중학생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가장이었던 그에게 절망은 사치일 뿐.

금동욱 대표는 “제가 휠체어를 이용하게 되다보니까 휠체어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처음에는 휠체어 판매하는 일을 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커다란 병원용 휠체어만 제작이 가능했죠. 지금처럼 활동용, 스포츠용 휠체어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2001년 사업에 처음 도전했는데 용접, 가공, 봉제 전과정을 독학으로 익혔죠. 경험도 노하우도 부족했고 성공적이진 않았어요. 그게 다 자산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6년이 흐른 2007년 경기 안성에 공장을 차리며 재기를 노렸지만 힘들기는 매한가지. 그 후 2년여의 준비 끝에 2009년 휠체어 제조공장을 시작, 맞춤 제작이 필수인 스포츠용 휠체어로 승부수를 띄운 금동욱 대표.

금 대표는 “럭비용 휠체어가 시작이었어요. 아시아에서는 첫 시도였죠. 이젠 자신감을 얻으면서 배드민턴, 테니스, 펜싱 등 다양한 종목에 맞는 휠체어를 생산했어요. 국가대표 선수들이 저희 회사 제품을 사용하면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어요. 정말 기뻤죠”라고 말한다.

주문의 반 이상은 입소문.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은 휠라인의 제품은 중국으로까지 판로가 확대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 매출이 연간 10억 원 정도로 안정되어 가고 있다.

제36회 장애인의 날 시상식에서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하게 되는 금동욱 대표.

지난해 오랜 바람으로 아이를 얻은 기쁨에 비길 만 하다는 그는 앞으로도 내가 사용하는 휠체어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제품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윤정열 서울시립뇌성마비 복지관 축구단 코치

그라운드 위에서는 모두가 ‘선수’일 뿐 윤정열

만능 스포츠맨 윤정열 씨(남・58・뇌병변장애)는 초록 잔디가 깔린 그라운드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다. 그가 코치로 활동 중인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축구단 선수들과 경기를 뛰며 땀을 흠뻑 흘릴 때, 가장 즐겁다.

윤정열 씨는 10살 이전까지 어머니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해야 할 정도로 장애가 심했지만. 그를 세상으로 나오게 한 건 ‘축구’였다.

20대 청년이던 1980년대 뇌성마비청소년 국제캠프 참가를 계기로 뇌성마비청년 자조단체인 ‘청우회(靑友會)’를 조직했으며 이렇게 활발히 운영되던 모임은 2007년 ‘한국뇌성마비장애인협회 청우(靑友)’로 거듭나 뇌성마비 청년 회원 200여 명이 활동하는 단체로 성장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윤정열 씨에게 1988년은 매우 특별하다. 그는 서울장애인올림픽 축구국가대표로 선발, 주전골기퍼로 활약했다. 메달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이때의 경험으로 이듬해인 1989년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축구단의 전신인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부를 창단했다. 훈련 장소, 섭외, 대회 출전 등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7인제뇌성마비축구에 대한 열정을 더욱 커졌다.

윤정열 씨는 우리나라 장애인 축구의 1세대이다. 그라운드를 뛰던 선수에서 자연스레 지도자로 포지션을 바꿔갔다. 축구단을 체계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축구지도자 과정을 이수했고 영국프리미어리그 스킬즈교육을 수강하기도 했으며 2014 인천아시안게임 7인제축구 국가대표 등 국제경기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축구는 윤정열 씨의 삶을 바꿨다. 뇌성마비장애로 걷기조차 힘들었던 그가 축구를 시작하며 하지 근력이 좋아졌다. 보행이 가능해진 것. 누구보다 장애인 스포츠의 필요성을 알고 있다. 2010년부터 장애청소년 축구교실을 운영하며 기술자문도 맡고 있다.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윤정열 씨는 지난해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만학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장성빈 전주예술고등학교생

판소리 명창을 꿈꾸는 발달장애 소리꾼 장성빈 군

열여덟. 빠른 비트와 화려한 퍼포먼스의 아이돌음악이 익숙할 법한 나이. ‘2016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전주예술고등학교 2학년인 장성빈 군(남・19・발달장애)은 또래 친구들과 달리 ‘국악(國樂)’에 푹 빠져 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시작된 ‘국악앓이’가 벌써 10년 가까이 된다.

어머님 배인년 씨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며 “학교 음악시간에 전래동요를 제법 잘 불렀던 모양이에요. 담임선생님께서 판소리를 배워 보는 게 어떠냐고 하시더라고요. 집 가까운 데에 국악 학원이 있어 보냈는데 아이가 진도를 잘 따라갔어요. 학원 선생님 권유로 시작한 지 3개월만에 ‘흥보가’로 전국아마추어국악경연대회에 참가했는데 덜컥 장려상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아이 스스로 명창이 되겠다 그런 꿈을 꿨어요.”라고 말한다.

첫 수상 이후 성빈 군은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 상을 곧잘 받았다. 성빈 군의 어머니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빠듯한 형편에서도 판소리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를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체계적으로 가르쳐야겠다 생각했어요. 전국의 여러 예술중·고등학교를 알아봤는데 중학교에서 판소리를 가르치는 곳은 몇 없더라고요. 전주는 판소리의 고장답게 명창은 물론 좋은 선생님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주예술중·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시험을 봤는데 성빈이의 장애를 이해해 주시고 입학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죠.”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주위의 여러 도움으로, 학비는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고 현재 개인레슨은 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다. 또, 공연 의상은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는 곳을 추천받아 한복 맵시를 근사하게 뽐내고 있다.

성빈 군의 어머니는 아이의 재능을 좋은 일에 나누고 싶었다. 일년에 두세 차례 집에서 가까운 전주성모요양병원을 찾아 치매 어르신들에게 판소리며 우리 민요를 들려 드린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수원, 익산 등 여러 지역의 시설들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일구, 송순성 선생님을 닮고 싶어요.”

성빈 군은 장애를 가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준 스승님들의 인품을 닮고 싶다고 했다. 올 여름방학이면 ‘득음’에 정진할 예정이다. 언젠가 그의 목표처럼 적벽가를 비롯해 판소리 다섯마당을 완창할 수 있는 ‘명창’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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