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복충청효교육원원장

'청원' (請願)이라는 인도 영화 이야기다.

세계 제일가는 마술사는 그를 시기한 다른 마술사의 와이어 절단으로 불구가 된다. 전신이 마비된 상황에서 살아있는 것은 입 밖에 없다. 말만 할 수 있고 먹여주는 음식만을 목으로 넘긴다. 엄습해 오는 고통을 아무리 호소해도 어떤 치유의 방법도 없다. 그는 마지막 절규를 한다. 죽을 권리를 법원에 청한다.

법원은 결코 죽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단체, 종교단체도 죽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희귀난치성환자들에게 정부가 죽음을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무관심과 방치는 자칫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갈수도 있다.

세계 무역 대국이요, 경제 대국으로 위상이 정립된 대한민국에서 희귀난치성한자들의 살려달라는 소리에 정책 부재 탓을 하고 불신으로 이들의 절규를 외면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이들의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 아닌가.

선별복지라는 이름은 교과서적 용어인가 아니면 호흡 곤란으로 생과 사의 골목을 헤매는 이들의 호흡기관으로부터 호흡 보조기를 떼어내어 죽음으로 몰겠다는것인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대드는 형국의 청와대 앞 시위는 인성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릴 일일는지 모르지만 국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정치의 부재, 인성의 부재를 느께게 하는 일이다. 수의 위세로 정치권을 압박하는 포퓰리즘만 횡횡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인가를 묻고 싶다.

지역구에 내려가 내년 총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국회의원 나리들에게 묻고 싶다. 현장에 나와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그들과 아픔을 공유하며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누군가 나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한다. 내 가족 중에 그런 환자가 없으라는 법이 없는 것이니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방안을 모색해야한다. 인간의 존엄권중 제일 먼저가 생존권이다. 생존권은 인간중심의 휴머니즘이다.

이들이 평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하고 환자들 입장에 서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다 해야 한다.

당국자는 이 일을 해태할 경우 천인공노할 지탄을 면치 못하리라. 희귀난치성환자들에 대한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이들의 생명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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